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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노다 가세. 십오야 뜬 달이 왜 이리 밝아 산란한 이 마음 달랠 길 없네.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다미 소리도 처량쿠나.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만나보세. 감상 아리랑에 대하여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은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一群)의 민요로, 아리랑이라는 명칭은 이들 여음에서 비롯하고 있다. 아리랑은 남과 북에 고루 분포되어 있고, 국외 180여 개 동포사회에도 널리 향유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부른 '독립군아리랑'을 비롯하여 '연변아리랑' 등이 전승되어 오고, 멀리 소련시대 우즈베케스탄, 카자흐스탄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교포들의 '고려아리랑', 러시아 사할린 한인들의 '사할린아리랑'도 전해지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노랫말에서 ‘십오야 밝은 달’과 ‘풀벌레 우는 밤’을 강조어로 뽑아 고체로 도드라지게 하고 후렴과 더불어 세 구절을 민체로 흘려 잇달아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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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2)<br>강원도아리랑봄바람 불어서 꽃 피건마는 고닯은 이 신세 봄 오나마나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노다 가세. 감상 허난설헌 시 <가난한 여인>이다. 手把金剪刀 夜寒十指直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추운 밤 가위 잡은 손가락이 뻣뻣하네. 남의 혼수 옷을 짓고 있는 나는 되레 올해도 독수공방) 언 손을 호호 불며 새색시가 입을 고운 옷을 마르는 여인. 정작 본인은 혼처가 나서질 않아 빈방을 홀로 지킨다. 새 봄이 와 온천지가 꽃동산이건만 밭갈이로 고개 처들 겨를조차 없는 처지나 다를 게 없다. 가난한 이들한테는 모두가 그림의 떡! 아리랑이나 목 놓아 불러보자.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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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1)<br>원주아리랑아침에 만나면 오라버니요 밤중에 만나면 정든 님 일세 술집에 아주머닐 친하고 보니 냉수만 달래도 청주만 주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감상 눈이 맞아버린 이웃사촌 남녀의 사랑과 정분난 주모와 떠꺼머리총각의 행각이 외설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이 이는 것은 일탈이 주는 스릴에 마음이 끌린 때문일까. 사랑에 빠진 남녀의 가슴 쿵쾅거리는 감정을 글씨에 담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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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절창 정선아리랑!’#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공연이 지난 4월 26일 삼성동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렸다. 20대에서 60대까지의 제자들 20명과 5명의 반주자와 함께 경기잡가, 경기민요, 강원도민요, 아리랑모음, 이렇게 4개 종목 13곡을 선보였다. ‘2024 국가무형문화유산 전승지원 기획공연인 만큼 경기12잡가 중 선유가·제비가·영변가 3곡은 일종의 보유자가 계승해야 하는 의무 곡인 셈이고, 나머지 경기민요를 비롯한 강원도 민요와 아리랑 모음곡은 제자들의 전승 실상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인 듯하다. 이 중에 이호연 보유자와 전승자들이 함께 전해준 소리는 12잡가 중의 '선유가'와 '영변가', 그리고 경기민요 '노랫가락'이다. 그리고 보유자가 독창으로 부른 것은 12잡가의 하나인 제비가와 강원도민요 정선아리랑·한오백년·강원도아리랑, 이렇게 4곡이었다. 이 중에 관객의 반응이나 보유자의 목성대로 구사하여 자신도 만족스로운 표정을 보여준 것은 단연 '정선아리랑'이었다. 이 정선아리랑은 보유자의 10여 종에 이르는 음반 대부분에 수록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공연에서도 빼놓지 않는 곡이기도 하다. # 정선아리랑은 대체로 경기민요 소리꾼들이 선호하는 곡이다. 전국아리랑경창대회에서도 명창부가 선택하는 대표적 소리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를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잘 부르는 소리는 아니다. 그 이유는 시인 신경림 선생의 다음과 같은 감상평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내게는 노래이기 이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라고 했다. 곧 한국의 정서를 담고 있는 소리로서, 이 정서를 표현해 내지 못하면 ’정선아리랑‘이 아니라고 한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유튜브 매체를 통해 한 서양음악 전공가의 고백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유럽에서 30여 년 서양 고전음악을 공부하고 귀국하여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을 듣고 한참을 운 적이 있다.”라고 한 것이 그렇다. ‘김옥심의 정선아리랑’, 이 소리는 한국전쟁 말기 당시는 강원도였던 이천 지역에서 있었던 ‘육군예대’(성경린 단장) 공연에 갔다가 ‘정선 아라리’를 듣은 이창배 선생과 김옥심 선생이 돌아와 다시 짜 불러 알려진 소리이다. 이런 탄생 배경은 생전 이창배 선생의 후원자였던 전 종로문화원 반재식 원장, ‘종로 국악로 지킴이 김뻑국 선생’의 증언이 있고, 명고(名鼓) 장덕화 선생이 김옥심 선생과 친했던 명창 이은주 선생에게서 직접 들었다며 필자에게 전한 말로는 거의 일치한다. 이런 연유에서 음반을 통해 확인되는 정선아리랑은 네 가지 버젼이 존재한다. 전주(前奏)와 간주(間奏)의 유무, 대표사설을 "강원도 금강산~”으로 한 것과 "네 칠자나 내 팔자나~”로 한 것 등이 있기 때문이다. ‘김옥심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하고 ‘경기제(서울제) 정선아리랑’이라고도 명칭을 하는 이유인 것이다. 절창(絶唱), 이 말은 ‘다시 없는 명창’ 또는 ‘비할 데 없는 뛰어난 노래’라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빼어난 노래이기도 하고, 빼어난 명창을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다”나 "김옥심은 절창이다”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흔히 김옥심을 ‘하늘이 내린 소리’(La Voix Celeste) 또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명창’이라고 한다. 특히 그 목을 말하면서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표현은 거의 ‘정선아리랑’을 말할 때 동반되는 수식어이다. 그래서 김옥심의 정선아리랑은 절창이라는데 이의가 없는 것이다. 필자의 단견으로는 동시대 명창들 간의 경기민요 절창은 이렇게 본다. 묵계월은 ‘한오백년’(CD 경기민요의 향연), 안비취는 ‘이별가’, 이은주는 ‘긴아리랑’, 김옥심은 ‘정선아리랑’(오아시스 레코드 1476 경기민요 2집)이라고 본다. 이 네 분의 경기민요 4곡은 가히 다른 소리꾼들이 그 정서를 그만큼 표현해 내기는 쉽지 않을듯싶다.(그 원인의 하나로는 이들 소리가 성창(盛唱)된 시기로 보아 한국전쟁의 민족적 수난이란 정서가 반영된 것을 들기도 한다.) # ‘2024 이호연의 경기소리 숨’, 이호연도 정선아리랑도 절창이다. 이호연의 활동 이력이나 수상 경력은 누구 못지않게 화려하다. 그러나 그가 해낸 공연과 음반 취입과 방송 출연 레파토리 이력을 꼽아보면 알 수 있다. 매우 실험적이었고, 파격적이기도 했다. 공연으로는 1999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의 ‘통일의 소리 옥피리’ 초연을 들 수 있다. 이 공연 메세지는 야심찬 ‘밀레니엄 프로젝트-’한국의 소리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전공 종목으로 전체 국악판을 견인하겠다는 뱃심은 경기 소리꾼으로서의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고서는 수행할 수 없는 것이다. 음반 발매로는 2015년 발매한 광복 70년 주년 기념 발매 ‘통일아리랑’이 있다. 리딩통월드 오케스트라와 어린이 합창단을 동원한 음반이다. 이는 ‘분단 70년 남북 이산가족 예술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공연으로 전환해 4년간이나 지역 순회공연을 한 원천이었다. 국악인으로서 민족문제를 자신의 소리 주제로 반영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창작 작품을 취입, 발매하는 기획력이나 경제적 여유만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다. 나름의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어 2008년 취입, 발매에 이은 ‘이호연 唱 경기12잡가’ 음반과 악보집을 2021년에 내놓았다. 경기민요 전승 능력과 전수 활동의 최종 결정체를 내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경기 12잡가 전승자로서의 의무감과 그간의 전수활동에 대한 자신감이 배어있다. "우리 세대의 역할이 무형문화재 1세대 스승님들의 예능 원형을 보존, 계승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교육 과정에서 갖춘 지식을 기반으로 앞 세대에서 보존, 계승한 원형을 연구해 경기소리의 유래와 유형을 밝혀 학문으로서 정립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음반과 악보집의 신뢰를 담보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드디어 그 화려한 이력의 종결판을 확보했다. 지난해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사실을 말한다. "국가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종목의 전승능력, 전승환경, 전수활동 기여도 등의 탁월”함을 인정받은 결과이다. 1968년 이창배, 정득만 선생 사사와 1970년 안비취 선생 경기민요 전수, 1984년 제10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민요부문 장원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활동. 다소 늦은 67세에 보유자 인정을 받았지만, 그래서 더 빛을 발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민속극장 ‘풍류’에서의 ‘이호연 경기소리 숨’ 공연은 전체적으로 깔끔했다. 해설이 다소 밋밋했고, 음향이 너무 커서 앞자리에서 듣기에 불편한 정도 외에는 그렇다. 그러나 이 무대를 더욱 빛내준 것은 단연 보유자의 독창 ‘정선아리랑’이다. 이 소리는 1979년 한국음반의 ‘한국고전민요 제3집’(안비취 이은주 묵계월 3인 녹음)까지의 전주 형태 버젼이다. 1995년부터 연주되는 목탁소리와 합창의 인트로 버젼이 아니다. 이 버젼은 처음부터 감정을 고조시켜 다소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은데, 원래의 버젼은 후렴을 먼저 부르고 "강원도 금강산~”으로 시작하여 온전히 정서를 수용할 수 있게 하는 버젼이다. 보유자의 이번 정선아리랑은 원래의 버젼 그대로이다. 보유자가 부른 정선아리랑은 두 번째의 독창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은 중반쯤의 무대로 관객들의 호응은 준비된 상태였다. 여유와 관록이 배인 자태였다. 첫 음도 그렇고 전체적 요성(搖聲)이 매우 안정적이었다. 고음이 보유자의 특징으로 매우 청아했다. 사설의 해석도 담담하여 오히려 전달이 쉬웠다. 보유자에게 따르는 목성 평가, '청아 담백'이 충분히 전달된 정선아리랑 무대였다. 절창, 이호연, 그리고 정선아리랑! 그 여음이 오래갈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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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0)<br>금호강 밝은 달 비슬산 참꽃, 대구아리랑금호강 밝은달이 휘영청 떠오면 가신 님 그리워서 내 못살겠네. 비슬산 참꽃 필때 슬피 우는 소쩍새 우리 님도 내 그리워서 피 토해 우더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는 넘어 가네. 감상 참꽃은 진달래다. 두견화라고도 한다. 촉나라 망제가 죽어 두견새가 되었는데, 한이 맺혀 밤마다 피나게 울어 피가 떨어진 곳에 핀 꽃이 두견화라나. 소쩍새는 이름이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접동새, 휘파람새로도 부르고, 자규(子規), 두견(杜鵑), 두우(杜宇),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불여귀(不如歸), 귀촉도(歸蜀道)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두 중국 촉(蜀)의 망제(望帝)라는 왕의 사연에서 연유한다. 소월은 ‘시샘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 죽어서 접동새가 되었다’고 했고, 김영랑은 두견이를 ‘울어 피를 뱉고 뱉은 피 도로 삼켜 평생을 원한과 슬픔에 지친 작은 새’라고 했다. 고려 가요 ‘동동(動動)’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삼월 나며 開한 아으 滿春 달욋고지여 남이 부롤즛을 지녀 나샷다 . 아으 動動다리 (삼월이 지나 핀 늦봄의 달래꽃이여 남이 부러워할 모습을 지니고 나셨다)” 여기서 ‘진달래’의 옛이름이 ‘달외’인 것을 알겠고, ‘참꽃’에서 ‘眞’(참진)자의 훈과 ‘달외’가 어우러져 진짜 달래라 하여 ‘진달래꽃’되었음을 어림으로 짐작하겠다. 두견이와 진달래꽃에 얽힌 사연들이 사뭇 서럽다. 대구아리랑을 옮기며 문득 ‘피 울음 울어 피는 두견화여, 두견화 피어 부르는 봄이여’라는 시구가 떠올랐다. ‘금호강 밝은 달’과 ‘비슬산 참꽃’을 도드라지게 대칭시키고, 노랫말을 밑에, 후렴구를 옆에 두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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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의 환경을 위한 반장선거! 누가 반장이 될까?국립남도국악원은 오는 4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 대극장 진악당(전남 진도)에서 예술창작집단 소리하나 초청공연 아동극 '내가 반장이 된다면'을 선보인다. 소리하나는 전통문화 예술 활동을 바탕으로 다양한 국악 콘텐츠를 창의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이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2021년도에 창단하여,'토끼, 용궁 구출 대작전', '고양이 캠핑장 – 아리아리 아라리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공연은 전라남도 진도에 살고 있는 고양이가 관광객들로 더러워진 진도의 모습에 혼자 청소를 하지만 쉽지 않자,동물 친구들에게 진도를 깨끗하게 지킬 반장을 뽑기로 하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슴, 곰, 토끼, 고양이 등 다양한 동물들이 나와, 반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과연 어떤 동물이 반장이 될 것인지 국립남도국악원에서 함께 확인해 볼 수 있다. 공연은 무료이며, 공연 전후 진도읍사무소와 국악원, 오산초등학교(고군면) 거쳐 회동(신비의 바닷길) 등 국악원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제공한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을 위해 11월까지 공연 스탬프 쿠폰 이벤트를 진행하여 참여한 관람객들에게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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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8)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얼씨구 노다노다 가세 아지까리 동백아 네 열지마라 누구를 괴자고 네 열렸나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사리 동백은 왜 여는가 감상 동백은 생강나무의 강원도 사투리다.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서의 ‘동백’이 그렇고, 강원도 아리랑과 정선 아리랑에 등장하는 ‘동백’도 선운사 ‘동백’과는 다른 생강나무를 말한다. 생강나무는 3~4월에 노란 꽃을 피우며 상처를 내면 생강냄새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주까리의 씨앗은 한약명으로 피마자(蓖麻子)이다. 모두 열매를 이용해 기름을 짠다.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발라 치장한들 예쁘게 봐줄 대상이 없으니 아주까리 동백은 결국 무용지물인 셈이다. 아주까리 동백보다 양식으로 쓸 콩팥이 훨씬 절실한데 쓸 데 없는 아주까리 동백만 열리니 볼이 메일 밖에. 그러나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던가. *(누구를) 괴자고 : (누구를) 사랑하자고 *아지까리, 아사리: ‘아주까리’가 소리가 흐르면서 음이 변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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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한인 2세가 부르는 서러운 아리랑사할린한국교육원장 3년간 업무를 마치고 귀임한지 1년이 지났지만, 사할린 동포들의 서러운 처지를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코로나 시절 함께 불렀던 아리랑 선율에 따라서 부른 개사한 노래를 불러본다. 교육일지와 사진 속에 있는 사할린 동포 2세들의 얼굴들을 떠 올려본다. 사할린 한인 2세의 간절한 소망 사할린한국교육원 한국문화 수업을 함께하면서 이분들의 간절한 소망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동포들의 뼈져린 한은 영주귀국으로 조국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만나는 것이다. 한국으로 가신지 30년이 지나고 이미 영주귀국 후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2세대 자녀 한명과 그 배우자를 영주귀국 대상으로 확대되었다.(2021년) 그 이전까지는 풀릴 기미가 없이 가슴 아프게 지속되었다. 1세대 부모가 사망한 2세대 자녀들에 대해서는 현재 법적으로 영주귀국이나 귀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국적 취득에 관한 속지주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분들은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려서부터 한국어를 말하고 쓰고 배우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술김에 흥얼거리는 아리랑이나 민요 가락을 들으며 자랐고, 한국의 전통 풍습과 명절을 쇠었으며, 조선에서 가져 오거나 사할린에서 만들어 쓴 조선의 생활물품을 늘 보고 쓰며 아버지, 어머니 따라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어린시절, 청소년 시절, 냉전의 시기를 살아 왔다. 해방 후 냉전 시기에 사할린 한인들은 억류되어 감시 당하며 사회주의 소련땅 사할린의 노동력을 보충하는 신분이었다. 이동과 취업, 인간으로서의 권리적 측면에서 차별과 멸시는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과 소련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대한민국의 발전상이 보도되면서 급격히 사할린 한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지만, 어린 시절 당했던 차별과 수모에 대해서는 늘 대화의 끝에 "정말 숱하게 멸시를 받았어." 하시며 푸념하듯 말씀하시곤 했다. 오죽했으면 한인 2세대인 사할린태권도협회 안수학 회장은, 어린 시절 차별과 수모에 반대하여 싸움을 자주 했고, 김치 냄새난다고 놀리는 러시아 아이들 혼내주고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가라테를 배웠으며, 한러수교 후 태권도를 다시 익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국적을 러시아로 바꾸지 않고 평생 무국적으로 살다가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기대하고 있었고 2세대 자녀들은 귀환을 믿으며 굳건히 당당하게 살아왔다. 그렇게 냉전과 사회주의 시절을 살다가, 한국의 발전상이 사할린에 알려지고 사할린 한인의 존재와 귀환의 문제가 공영방송을 타면서 국내에도 알려졌다. 사실 한-러 수교 이전에도 KBS사회교육방송(현재 한민족방송)에서는 사할린 한인동포들이 고국의 친지에 전하는 사연들이, 일본으로 이중징용 되어 재일동포가 된 지인을 통해 전달되어 방송이 되곤 했다. 그러나 첨예한 냉전 시기에 관심도 지원도 교류도 불가능한 시기였다. 1990년 ‘사할린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고국방문이 이루어질 때 한국에 다녀오신 1세대 부모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주귀국 희망 신청이 이루지던 결정적 시기를 맞이하기 전에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이 참으로 많다. 그 시기에 생존해 계신 1세대분들은 영주귀국을 희망하고 신청하여 고국에 오셨지만, 사망하신 1세대분들은 영영 통한의 그리움 안고 타국 땅에서 숨을 거두고 그 섬에 묻히셨다. 사할린에 징용되었다가 일본으로 다시 이중 징용된 1세대 부모를 둔 2세대 자녀들은, 알음알음 정보를 얻어 일본의 한 공동묘지에서 외할아버지의 묘를 찾기도 하였다. 이 얽히고 설킨 일제 강제징용과 식민시대의 압제와 희생,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외면 당한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이분들에겐 실로 삶 전체가 버겁고 서러운 현실이다. 나는 어떤 영향력을 가진 위치에 있지는 않다. 하지만 영주귀국 확정 전에 부모를 잃은 2세대 분들의 원한을 내 두 귀로 듣고 두 눈으로 보고 가슴에 간직하게 되었다. 사할린 동포 지원 특별법에 "사망 등 다양한 사유로 영주귀국 신청을 하지 못한 1세대 동포들의 자녀들에게도 희망에 따라 영주귀국의 기회와 모국인 대한민국의 국적 취득이나 경제적 지원의 혜택을 드릴 수 있는 방안" 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범위의 2세대 분들 중에는 현 러시아 정부의 연금을 수령하는 분도 있고, 홀로 사업을 일으킨 분도 있으며, 이미 사할린 사회에 인정을 받은 문화 예술 공로자도 많다. 대한민국으로 영주귀국한다면 자녀들과의 이별을 두려워하는 분들도 많다. 따라서 그런 범위의 모든 2세대 분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국이 풀어주지 못한 부모의 원한을 보며 겪으며 성장하고 기억하는 자녀들의 소망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조국에서 살펴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할린 한인 2세의 고통과 설움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사할린한국교육원과 유치원에서 25년간 한국어를 가르치시다가 2021년 영주귀국 신청으로 한국에 오신 2세 전영희 선생님은, 어머니가 2004년 병환 중에 영주귀국을 하셨지만 대한민국 국적이 나오기 전에 병원에서 사망하셔서 한국 국적도 받지 못하였다. 그러니 전영희 선생님은 영주귀국 대상이 될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영주귀국 하시는 1세분과 재혼을 하여 배우자 자격으로 2021년 11월에 영주귀국을 하셨다. 그러나 배우자께서 역시 국적 취득 전에 별세하셔서 국적이 나오지 않아 애태우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화가 난다. 영주귀국 하신 분이 돌아가시면 사후에라도 국적을 드려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그래야 자녀에게도 법적으로 고국에서 살아 볼 기회가 생길 것 아닌가.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오셨는데 남편이 국적을 받기 전에 별세하여 배우자의 국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아내는 다시 돌아가라는 것인가. 너무나 법 적용이 허술하고 냉혹하다. 유독 사할린 한인, 사할린 동포들에게 더 냉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세 부모를 모시기 위해 영주귀국 허용된 2세 분들 중에는 한국어에 서툰 분들이 많고 일상 생활, 행정적 처리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다. 고국 정착 과정에 난제와 장벽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래서 사할린한국교육원의 한국어 교재를 다시 가져와 드린 적이 있다. 정착 지원 체계가 아직 자리 잡히지 않아 각자도생 해야한다는 말이 나왔다. KBS한민족방송이 주관하는 한민족체험수기대회에서, 2021년(사할린아리랑무용단 박영자 단장), 2022년(유즈노사할린스크 김경순) 성인 부문 대상을 모두 사할린 2세대 한인 어르신이 수상하셨다. 2021년 수상자 박영자님은,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다시 이중징용 되셨다가 끝내 일본에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인사드리던 기막힌 디아스포라가 담긴 가족사를 글로 남겼다. 수상 인터뷰에서 "KBS가 주는 이 대상은 우리 가문의 영광이기 전에 사할린 한인 전체에 주는 상"이라며 "사할린에서 다시 이중징용으로 일본 탄광으로 끌려가서 타국에 묻히신 외할아버지께 이 상을 바친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하셨다. 2022년 수상자인 김경순님은 아버지에 대한 가족사를 이야기했다. 90년대 중반 병든 노부모가 한달 간의 모국방문에서, 50년 만에 아들과 상봉 후 다시 이별하여 사할린에 돌아와 몇 개월 만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끝내 영주귀국 신청을 해보지 못한 서러움에 관한 처절한 가족사의 이야기를 쓰셨다. 특히 김경순님은 한국교육원 한국문화 수업시간에 배운 가수 조용필의 노래(그 겨울의 찻집)와 주병선의 노래(칠갑산) 가사를 바꿔 부모에 대한 기억, 조국 귀환에 대한 부모의 열망, 부모님과 10살 아들(김경순님의 오빠)과의 이별 장면 등을 가사에 담아 내게 보내셨다. 그 노래를 노래방 반주에 맞추어 불러 보았는데, 부르다가 여러 번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터져 한참 후에나 완전히 부를 수 있었다. 그 노래 영상들을 김경순님께 내가 보냈고 김경순님은 한국의 조카들(큰 오빠의 자녀)에게 보내 드렸다고 한다. 그러면 조카들로부터 아버지 어린 시절을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다고 한다. 박영자님의 외할아버지 이야기와 김경순님의 부모님과 오빠에 대한 사연은, ㈜국악신문과 새고려신문과 ‘우리말방송’에도 게재되고 방영되었다. 김경순님 사연은 KBS한민족방송에서도 사할린과 전화로 연결하여 소개되기도 하였다. 나도 방송에 출연하여 사연과 노래 가사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소개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사할린 동포, 사할린 한인 1992년부터 시작된 사할린 동포 1세대의 영주귀국 사업으로 현재까지 4,700여 분이 홀로 또는 배우자와 함께, 그리고 2021년부터는 '이미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의 2세대 자녀 1인과 배우자가 한국에 영주귀국하여 사신다. '사할린 동포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되었거나 사할린에서 태어난 한인들을 ‘사할린동포’라고 정의한다. 이분들이 영주귀국이 허용된 사할린 동포 1세대이다. 따라서 사할린에서 한 집안이나 동네에서 자란 언니, 동생, 친구라도 1945년 8월 15일을 기점으로 영주귀국 지원 혹은 희망과 신청 대상이 되기도 하고 제외되기도 하였다. 게다가 영주귀국 사업 개시 당시 생존하는 1세대 한인에 한하여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신청 및 허용 대상이 되었다. 이 글은 영주귀국 사업과 신청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하거나 기타 사정으로 영주귀국 신청을 할 수 없었던 부모를 둔, 2세대 사할린 한인 자녀들의 간절한 소망에 관한 것이다. 이분들은 2024년 현재 연령상 60대 후반에서 70대 중반에 이르신 분들이다. 조국 귀환의 기회를 누리지 못한 불쌍한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통절한 한을 품은 채 살고 계시다. 어떻게든, 그렇게도 부모가 돌아가고 싶던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계시다. 영주귀국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 국적 취득을 하고 싶어 하신다. 그런데 절차가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이런 점을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2020년에서 부터 3년간 한국문화교류가 단절되는 시기 필자는 임시 탈춤강습과 탈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국립사할린대학 한국어과 학생들과 사할린아리랑무용단 단원들에게 탈춤 기본 춤사위를 지도했다. 우리 민족은 어디를 가나 노래방이 있듯이 러시아는 춤을 즐기는 민족이다. 사교댄스나 스포츠댄스 모임이 많다. 아마도 죽을 때가지 춤을 추다가 간다고나할까. 동포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실버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함께 춤을 배우기도 했다. 그들에게 탈춤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렇게 동포들과 가까이 만나게 되면서 사할린 한인들의 이산에 대해 4대 가족사를 접하게 되었다. 특히 댄스 클럽에서 만난 오석만씨가 KBS한민족방송에서 체험수기 공모전에서 2023년 우수상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누구나 한국어 글쓰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사할린 한인들의 가족사는 바로 잊혀진 한국사이고 동아시아 전쟁사라는 나의 설득에 용기를 내서 슬픈 가족사를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책으로 묶여 나와서 보내드리게 되었다. 한국교육원 수업에서 한국어 수업이나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인들이 과제물로 내 놓은 체험수기 중 우수한 작품이 KBS한민족체험수기에서 매년 대상과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경순님은 한국교육원 수업에서 ‘그 겨울의 찻집’ 노래를 배우신 후 ‘눈물의 섬, 사할린’으로 가사를 정셨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가사 중에 특히 "사무친 한을 풀어 주세요."는 대한민국에 외치는 절규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서러운 아리랑 사할린으로 끌려 왔어요. 조선 땅에서 그 옛날 일본 놈들의 시달림 받고, 늘 괴로움에 떨었죠 가고픈 고향 한국 땅으로, 부모형제 사는 마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 한숨만 저절로 나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리워라 내 고향 사모친 한을 풀어 주세요, 하루 속히 날아 가고파 그늘진 세월, 고향 그리며, 철천지 한이 되었네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꿈에서 본 내 고향 그리고 ‘칠갑산’ 노래의 곡조를 생각하면서 부모와 이별하는 어린 10살의 오빠의 심정을 감정이입하여 지은 ‘’ 가사는 이러하다. 이별의 부두 부모 잃은 어린 마음을, 그 누가 알아 주리요 외로웁고 서럽던 아픔, 누구에게 원망 주리요 어머니는 내게 같이 떠나자, 애닯게 속삭였지만 할아버지 무서워 끝내, 따라간다는 말을 못했소 어머니가 나를 두고 떠난 날, 배 떠난 부두에 나가 하염없이 목 놓아 울었다오.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또 김경순님은 아리랑민족의 후예로서, 부모님과 큰오빠의 오십년 이별과 한번의 만남, 또 이별과 사별의 한, 전체 사할린 한인동포들의 고통의 역사를 담아 아리랑 가사로 쓰셔서 내게 보내셨다. 적절한 아리랑 곡을 찾아 보았는데, BTS의 아리랑이 긴 가사를 모두 담을 수 있었기에 노래로 불러서 보내 드렸다. 도중에 여러 번 목이 메었다. '한맺힌 사할린 아리랑'을 정리한 가사는 이러하다. 한맺힌 사할린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일제에 끌려 사할린 왔소. 모질던 징용살이 누가 아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넘어간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갈 믿음에 살아 낸 세월 [랩 버젼] 한달만 있다가 돌아간단 그말, 어찌나 기다렸는지. 밤이면 라디오 틀어 놓고서 혹시나 우리를 찾을까 봐. 애타게 기다린 자식 형제들 오십년 넘어서 만나보네. 수십년 세월을 참아 왔는데 언제 또 고향 땅을 밟아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기다리다 지쳐 세상 뜨신, 우리네 부모님들 불쌍하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 넘어간다. 부모들 사모친 한 생각하면, 애타던 자식들도 가여워라. 너나없이 서럽고 아파 어이하오. 이 가사의 핵심은 부모와 어린 오빠가 결국 다시 만나지 못하고 생을 마친 것, 그런 가엾은 부모를 보는 자식들 모두 차마 맨 정신으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가엾다는 점이다. 영주귀국의 기회가 오기 전에 돌아가신 불쌍한 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진다. 부모님의 나라에 더 가까이 가고 싶은데 도무지 소식도 없고 희망을 찾을 수도 없다. 이 아리랑의 마지막 가사들은, 그렇게 부모를 잃고 조국과 단절된 채 희망을 잃은 사할린 한인 2세대 자녀들의 심정을 그대로 외치는 절규다. "(조국 귀환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 뜨신 우리네 부모님들 불쌍하오 부모들 사모친 한 생각하면 애타던 자식들도 가여워라 너나없이 서럽고 아파 어이하오 2023년 9월에는 ㈜국악신문사(대표이사 기미양)를 통하여, 아리랑 무용단장 박영자님(갈리나 박)의 아리랑 가사를 받았다. 박 단장님 역시 일찍 부모를 잃고 영주귀국의 희망이 사라진 심정과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마음 속의 조국에 대한 이미지와 당신의 현실에 대하여 "사할린 2세 아리랑"라는 재목을 달고 가사를 지으셨다. 아리랑 반주를 확장하여 가사를 붙여 서울의 사무실에서 불러 보았다. 사할린 2세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는 사할린 2세 한인 할머니, 하지만 부모 조국은 한국이라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 어릴 때 저 산 너머엔, 내 조국 있다고 믿었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팔십 년 세월 부모 잃고 서럽구나, 나도 이제 주름진 할머니로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말문 터진 손주들 자주 묻는 말, 할머니와 조국에서 살 수는 없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발전되어 잘 사는 우리 조국 한국, 우리에겐 자랑스런 마음만 크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언젠가 이 생명 끝나기 전에, 조국 품이 우리 2세들 안아 줄까 한인 2세, 우리는 누구인가요 어릴 적부터 조국의 존재를 믿고 한국어, 한국문화로 정체성을 지켜 왔지만, 영주귀국 신청 시기 이전에 부모를 빨리 여의신 사할린 한인 2세 어르신들의 심정은 한결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한국을 조국으로 선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당신들께도 주어지면 좋겠다는 것이다. 설령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사할린 사회에 뿌리박은 삶의 터전을 옮기는 문제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자녀들과의 이산, 다른 친지, 친구들과의 이산을 의미하며 기존의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는 연금의 상실과 영주귀국 후 생활보호대상자 신분으로서의 생활 등 수많은 심적 갈등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조국이 부모의 한을 풀어 준다는 기본적인 정책의 도리와 그로부터 받는 부수적 혜택이면 충분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들의 국적 취득이나 자녀의 유학이나 체류 등에 있어서 유연함 같은 혜택일 수 있다. 엄연히 식민지 시기 타국으로 강제동원된 국민들의 자손이 아닌가 말이다. 202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 정권에 항복하여 붕괴되던 시기, 그간 한국 정부에 기여한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가족들을 우리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목숨을 걸고 안전하게 데려온 미라클(기적)의 작전이 있었다. 그러한 쾌거는 우리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한국 정부의 도덕성과 형제애 및 인류애를 상기시킨다. 그런 인류애와 형제애를 지닌, 정의로운 나라가, 강제로 희생된 일제침략기의 혈육과 자손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또한 지나치게 엄격한 법률의 적용으로 인해, 명백한 국적 회복의 기회를 주어야 하는 상황(영주귀국 후 국적 취득 전 사망하신 경우)에서 비인륜적으로 국적을 부여하지 않아 그 자녀들의 기회가 방기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법의 취지를 저버리는 일이다. 법의 사각지대는 극단적으로 냉혹하게 2세대분들의 가슴을 갈라 놓는다. 법이 어째 그리 촘촘하지 못하여 법 구실을 다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일본 정부나 러시아 정부와 얽힌 외교적, 법률적인 문제들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런 문제 해결의 전제없이도 우리 정부의 결단이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일 아닐까 생각한다. 하물며 인구도 수십년 간 하염없이 감소하고 있어 국가 소멸의 길로 가는 절체절명의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체 무엇을 망설이는가 묻고 싶다. 나는 2세분들의 사무치고 뼈저린 한마디 한마디를 기억한다. "왜 한국은 그렇게 발전했으면서 우리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죠? 옛날엔 가난했다, 전쟁으로 힘들었다, 다 이해해요. 그런데 지금은요?" "부모들은 우리에게 한국어와 한자를 가르쳤어요. 조국에 돌아갈 때까지 잊으면 안된다고. 저 산 넘어가면, 바다 건너가면 조국 조선땅이 있다고 했어요. 고향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소련 시절에, 영주귀국 전에, 병으로, 이중징용으로 다 돌아 가셔서 우리들은 갈 기회가 없어졌어요. 우린 뭐에요?" "부모가 끝내 돌아가지 못한 고향에, 왜 사할린에서 태어난 2세들은 못 살아 보는 거죠? 한국말도 말하고 생활방식도 한국식으로 잊지 않고 지켜왔는데?" 한국 교육부에서 파견 나온 교육공무원은 이에 대해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다만 ‘제가 그런 것을 결정하거나 영향을 미칠 만한 능력이 없어서 죄송해요.’ 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의 애환을 담은 가사에 노래를 불렀고, 교실과 공원에서 한국의 인기 가요를 불렀으며 탈춤을 소개하고 민속춤을 같이 추었으며 한국문화 수업을 했다. 그리고 ‘한국어말하기대회’에서 발표하실 내용을 컴퓨터로 옮겨 드리고 약간 교정하는 역할만을 했다. 나는 한국에 복귀 이후 영주귀국 사할린 동포들의 행사에는 가능한 참여하고 있다. 지난 3월 23일 파주사할린동포회 영주귀국 15주년 행사에서 전국사할린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님을 비롯한 사할린동포들과 함께 사할린아리랑이 대합창으로 불려졌다. 사할린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믈을 흘리신다. 우리는 그분들이 흘리신 디아스포라의 눈물을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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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7)춘천아 봉의산아 너 잘 있거라 신연강 뱃머리가 하직일세 싸리재 아흔 아홉구비 우리 복병 삼악산아 우리 군대를 보호해다오 동녘에 비친 달아 우리 군대 명랑하게 비추어 다오 잊지 말라 명예도 지위도 버리고 이 강산 굳게 지켜 싸워다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춘천의병아리랑을 쓰니 때는 갑진춘사월이라 한얼이종선 감상 의병(義兵)이란 나라가 외세의 침입으로 위험에 처하고 관군이 무력할 때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적과 싸운 민병(民兵)을 말한다. 당연히 국가의 군대가 강건하면 의병은 생겨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의병은 삼국시대 이후부터 있었지만, 특히 조선조 말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수많은 외침을 겪으며 의병이 일어났다. 농사를 짓던 백성들이 의병에 참여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눈물 나는 역사는 국가가 얼마나 허술하게 운영되었느냐는 반증이기도 하다. 남이 나를 칠 때는 그만한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만만하니까 쳐들어 온 것 아닌가.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人必自侮然後 人侮之 (인필자모연후 인모지) 家必自毁以後 人毁之 (가필자훼이후 인훼지) 國必自伐以後 人伐之 (국필자벌이후 인벌지)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고 집안도 스스로 헐뜯은 뒤에 남이 그 집을 훼손하며 나라는 안에서 무너진 후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치는 것이다. 국가의 허술한 경영이 백성들의 부질없는 피와 눈물을 부른다. 개인이나 국가나 자강불식(自强不息)할 일이다. 의병 나가는 자식의 안전을 삼악산과 밝은 달에 하염없이 빈다. 끝내 나라를 지켜내고 부디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미의 간절한 심정을 처연한 마음으로 옮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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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아미, 퓨전국악 디지털 싱글 ‘강강술래’ 발표판소리 소리꾼 ‘아미(AMI)’(소속사 스튜디오 아라리오)가 디지털 싱글 ‘강강술래’를 발표하고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잇는 퓨전국악 열풍 재현에 나선다. 지난 2020년 발표된 ‘범 내려온다’는 밴드음악과 국악을 접목시킨 신박한 곡에 현대무용팀의 안무 등이 더해지며 국민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각종 방송과 광고, 커버, 패러디까지 다양한 콘텐츠와 밈이 양산됐고 한동안 이날치의 인기는 이어졌다.‘아미’의 이번 디지털 싱글 ‘강강술래’는 EDM 장르로, ‘범 내려온다’보다 한발 더 앞선 트랜디한 감성을 담았다. 기존의 퓨전국악 곡들이 대부분 밴드 구성인데 반해 ‘강강술래’는 솔로곡인 점이 특징이다.원래 강강술래는 중요 무형문화제 8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추석날 보름달 아래에서 여러 명의 사람이 원을 그리면서 손을 잡고 돌며 노래하는 전통놀이다.소리꾼 ‘아미’의 신곡 ‘강강술래’는 이러한 전통 강강술래 노래를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아미’ 특유의 전통 판소리 창법과 유니크한 보컬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장르를 넘나드는 신선함을 선사한다. 특히 반복적인 EDM 멜로디가 중독적인 곡이다.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OST, CF ‘LG grem’ CM송 등의 프로듀서인 Ra.L(라엘)이 작사, 작곡, 디렉팅을 맡았다.‘아미’의 신곡 ‘강강술래’의 국내 음원은 3월 18일, 해외 음원은 3월 20일 공개됐으며 현재 네이버뮤직, 멜론, 지니뮤직, 벅스, 유튜브뮤직 등에서 들을 수 있다.한편 ‘아미’는 본명이 왕해경으로, 인간문화재인 아버지(왕기창)와 삼촌(왕기철, 왕기석)을 배출한 판소리 명문가 출신의 퓨전국악 싱어송라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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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의 의외의 원류? ‘일본아리랑’에 놀라한국을 대표하는 음곡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라는 노래다. 각종 스포츠 대회나 정상회담 만찬회 등 공식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연주되어 국가에 준하는 음곡으로서 널리 알려져 왔다. '아리랑'에는 각지에서 노래를 이어온 순민요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중가요가 있지만, 잘 알려진 것은 후자다. 행사 때 연주하는 것도 다 이쪽이다. 대중가요로써의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히트 영화 '아리랑' (나운규 감독·주연)의 주제가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이후 한일 양측에서 편곡하거나 가사를 바꾸거나 해서 많이 제작되었다. 가사에 있는 "나를 버리고 가실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라는 이별과 모정은 한일 양측의 정서에 딱 맞아떨어져서 사랑받았다. 이 아리랑을 둘러싸고 얼마 전 서울에서 세미나가 있어 뜻밖의 사실을 마주했다. 영화‘아리랑’으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났지만 전쟁 전·후를 통해 ‘아리랑’의 이름이 붙은 노래는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제작 발매되어 왔다는 것이다. 한국 연구자에 따르면 일본에서 판매된 관련 레코드는 300종 이상이며 그중 일본인이 일본어로 부른 것은 200종에 달해, 한국의 4~5배나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32년에 고가 마사오 편곡으로 아와야 노리코의 ‘아리랑의 노래’가 나왔고, 그 외에도 ‘아리링고우타(小唄)’, ‘도도이쓰(都々逸)아리랑’, ‘아리랑자장가’ 등 각종 ‘아리랑’이 나왔으며, 당시 신문은 도쿄 번화가에서 아리랑 노래가 나오고 있다고 ‘아리랑붐’을 전할 정도였다. 이는 종전 후에도 이어져 스가와라 쓰즈코에게는 6종류나 되는 ‘아리랑’이 있으며, 고마도리 자매의 ‘아리랑부두’를 비롯해 미야코 하루미, 니시다 사치코, 미야기 마리코, 아이조지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가수들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세미나에서는 "이것은 이제 ‘일본아리랑’이다”라고 놀라움을 자아냈지만, 일본인들은 한국(조선)에 대해 오래전부터 차별이나 편견, 거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좋은 것은 좋다’고 평가하며 선호해 온 것이다. 한류붐이나 K팝도 놀랄 일이 아니다. 동시에 일본은 옛날부터 문화적 수용성이 높은 사회였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객원 논설위원, 2024/2/12 =한류 의외의 원류? ‘일본아리랑’에 놀라-번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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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5)어데예 아니라예 핑계만 찾지 말고 좋으면 좋다고 눈만 껌뻑 하이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나는 넘어가네. 감상 "가가 가가?” ‘그 사람이 아까 그 사람이었어?’라는 뜻의 경상도 말이다. 사투리를 다른 지방 사람들이 대뜸 알아듣기는 쉽지 않다. 서울 남자와 대구 아가씨가 데이트 중이다. 남자: 나는 아가씨가 좋은데 그 쪽도 나를 좋아해요? 여자: 어데예 (자기도 ‘그렇다’는 뜻이다.) 부정으로 표현하는 예도 있다. 남자: 우리 나중에 다시 볼까요....? 여자: 언제예(언지예)...? (거절하며 튕기는 말이다.) 남자: (날짜를 정하라는 말로 알아듣고는) 다음 주 토요일에 봅시다. 여자: 어데예...?(이건 진짜 싫다는 뜻) 이 쯤 되면 소통이 먹통이다. ‘아니라예~’도 ‘괜찮다’는 뜻의 긍정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부정과 긍정이 혼용되기 때문에 전체 분위기와 문맥을 이해하지 않고는 알아듣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수줍은 아가씨의 감정표현은 더욱 난해하다. 차라리 눈을 껌뻑하는 것이 훨씬 빠르다. 사투리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 듣는 것만으로도 정겨움으로 미소가 인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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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한글서예가전에서 만난 사할린아리랑사할린아리랑 따뜻한 조선땅을 놔 두고 가라후토엔 내 여기 왜 왔나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많은 南樺太 징용왔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즘한글서예협회 이종선 회장의 초청을 받고 13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 도착했다. 개막식을 마치고 30명의 작가가 내놓은 100점이나 되는 한국 전통문화 서예작품들을 감상했다. 이종선 회장님이 축사를 부탁하셔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은 바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가서 해방이 되었지만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70년을 러시아 국민으로 살아야 했지만 우리는 독자적인 한글이 있어서 당당하게 디아스포라와 고난을 넘길 수 있었다."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왔다. 그래서 러시아 전국에서 사할린에서만 한글판 새고려신문이 존재한다. 전국에서 불리는 아리랑이 다양한 작가들의 다양한 서체로 표현 된 아름다운 서예작품이 되어 걸려 있다. 한국 전통문화 '서예'라는 예술분야인데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한글이 예술작품으로 탄생한 전시회이다. 아름다운 서체로 쓰여진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서예로 탄생한 다양한 한글 서체는 꽃이 되고 나비가 되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전통문화를 지키는 이즘협회 작가들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계승이 안되는 분야이다. 북한에는 서예전시회 같은 창조적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품들이 국악신문사에 기증이 되어 국내외에서 전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얼 이종선 회장님이 직접 '사할린아리랑' 작품 앞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그동안 국악신문 수요 연재 한글서예로만 받아 보았던 예술작품을 직접 보니 감동이 밀려왔다. 특히 이 작품은 사할린 한국어 교육의 리더 공노원(사할린한국어교육협회 부회장) 선생이 갑자기 세상을 뜨기 5일 전 (2022년 9월 25일자) 수요 연재로 나와서 더욱 스토리를 더하는 작품이다. 당시 9월 28일 양구 두타연에서 개최 되는 PLZ축제에 인천과 양주에 사는 사할린동포들이 초청 되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안에서 이종선 선생의 사할린아리랑 작품을 공노원 선생이 인쇄해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공선생은 한얼 선생의 '한글서예로 읽는 우리 음악 사설' 수요 연재 내용을 자라나는 고려인 학생들에게 한글 수업에서 활용했다고 전해진다. 우리 부모들이 사할린에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는 아리랑이다. 당시 일하면서 힘들때, 고향이 그리울 때, 결혼식 같은 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이었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아리랑이 유일하다. 그래서 누구나 모이면 작대기로 장단을 두드리며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러시아나 유럽 어느 민족에게도 하나의 노래로 부를 수 있는 곡은 없다. 우리 민족은 언제 어디서든 아리랑으로 하나가 된다. 올해는 파주에 정주한 150명 사할린 동포들이 귀국 15주년기념 행사로 오는 23일 '파주아리랑 콘서트'를 개최한다. 그날 휘날레에서 사할린 가수들과 이혜솔 명창이 관객들과 '사할린아리랑'을 함께 부르기로 했다. 2017년부터 매년 개최되는 사할린아리랑축제를 통해 사할린에는 아리랑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20년 사할린 정부는 우리에게 사할린한인문화센터 앞에 아리랑공원과 아리랑누각을 선사해 주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 불리는 전국 지역에는 아리랑노래비가 세워져있다. 정선, 진도, 밀양, 문경, 상주, 영천 등. 사할린 아리랑공원에도 사할린 한인의 역사가 담긴 이 사할린아리랑이 새겨진 사할린아리랑노래비가 세워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늘 이 아리랑 작품들이 사할린 전시장에서 걸리기만을 고대해 본다. 우리 동포들에게 큰 자긍심이 될 것이다. 현재 러시아에서는 한류 열풍으로 한글학과도 생겨나고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사할린 동포들을 대표해서 이 행사를 개최한 (사)이즘한글서예협회 이종선 회장과 지원을 해주신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에게 감사를 드린다. 다시 한번 이즘전을 축하한다. 사할린아리랑 무정한세월 야속하다 청춘시절 날 데려와 팔십삼이 먹도록 여기서 다 늙어 영혼이 되네. 아이구 원통하고도 참말루 싫어 누구게다 한을 다 풀까요. 서른다섯에 남편을 잃고 혼저 자탄 애탄하며 팔십 서이를 살어 나와 누구게다 이런 한을 풀겠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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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4)어떤 잡놈이 임 좋다 했냐 알고 보면은 큰 원수로고나 아리아리랑 서리서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감상 처음 만나 정이 살가울 때는 웬만한 서운함도 봄눈 녹듯 하지만 정이 식어 버리고 나면 하는 짓, 보이는 것 마다 못마땅하다. 땜장이를 시켜서라도 떨어진 정을 때우고 싶은 것은 남은 정이라도 있으니 그나마 낫다. 하고 한 날 술주정에 밥 먹듯 외도라도 할라치면 ‘웬수’도 이런 ‘웬수’가 없는 것이다. 불 같이 일어난 화는 엉뚱한 사람에게 퍼 부어지고, 사랑 노래 부르는 사람은 이내 쳐 죽일 ‘잡놈’이 되고 만다. 막무가내로 꼬여 버린 심사를 민체로 가로 써서 표현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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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3)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감상 아리랑은 통곡이다. 아리랑은 피다. 아리랑은 분노이다. 아리랑은 항변이며, 절규이며, 반란이다. 아리랑은 풍자하고, 아리랑은 힐난하며, 아리랑은 비아냥거린다. 아리랑은 자지러지고, 흐늘거리며, 능청스럽다가 은근해지기도 한다. 아리랑은 증언할 뿐이다. 언제나 그 ‘고개’를 넘어가며 증언할 뿐이다. 그것은 아리랑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숱한 왜곡과 수난의 고개를 넘어 오늘도 바람소리처럼 들려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바로 우리 민족의 힘인 것이다. -김연갑 <아리랑 서설> 중에서 이 밀양아리랑은 아리랑의 간판스타다. 아리랑이 이 노래 밖에 없는 줄 알았던 내 어릴 적, 의미도 모르면서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이며 이 노래를 불렀다. 붉은 문양지에 그 때를 회상하며 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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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2)강원도 정선읍네 새물 나드리 물레방아 허풍선이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서 비빙글 베벵글 도는데 우리집 이 멍텅구리는 날 안구 돌 줄을 몰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루 나를 넴겨주오 감상 * 허풍선이 [虛風扇-]: 말과 행동이 너무 과장되어 실속이나 믿음성이 없는 사람 부부의 정은 이불 속에서 꽃을 피우고 영글어 간다. 오붓한 정으로 백년을 해로하는 게 모든 이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람은 대개 어긋나기가 일쑤이고 부부 사이가 원만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정이라는 것이 매번 같은 부피와 모양을 지니지 못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길 사람 속보다도 더 알 수 없는 것이 부부의 이불 속 사정일 것이다. 대개는 이불 속의 냉기를 속수무책으로 감내하며, 돌아누운 상대의 완고한 등의 높이에 절망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누라의 욕망을 소 닭 보듯 하는 남편은 이내 멍텅구리가 되고 하루 종일 물레방아를 따라 도는 허풍쟁이 남정네한테 자꾸만 눈이 간다. 이게 사람의 정이고 마음인 것이다. 족자문양지에 스산한 여인의 마음을 옮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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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의 아픈 '기억'…광주서 선보인 연극 '봉선화Ⅲ'"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일본인 배우들이 한국 민요 '아리랑'을 부르자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커튼이 내려가자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쳤다. 24일 오후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연극 '봉선화Ⅲ'는 일제 강점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소녀들의 애환과 40여년에 걸친 인권 회복 운동 과정이 오롯이 펼쳐졌다. 일제 강제 노역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본 나고야시민연극단이 마련한 이 연극에는 중고등학생부터 70세까지 아마추어 일본인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근로정신대 양금덕 할머니를 비롯해 조선인으로 분해 일제의 인권 유린 역사를 몸으로 표현했다. 이날 연극은 광주문화재단이 사전 예약을 받아 무료로 진행했으며 매진됐다. 600여석의 좌석을 꽉 채운 관객들은 소녀들이 강제 노동을 하던 중 숨죽이며 노래를 부르거나,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피해소송에서 이겼을 때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오자 눈물을 흘렸다. 나카 토시오 감독은 "봉선화 첫 공연을 했던 2003년도 당시에는 배우로 출연했고, 연극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느끼고 감독을 맡게 됐다"며 "모든 배우가 아리랑 음악을 유창하게 부를 수 있었던 건 일본에서 재일교포에게 직접 배우고, 연습한 결과"라고 말했다. 원고 양금덕 할머니 역할을 맡은 무토 요코 씨는 "(일본)시민으로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를 준) 미쓰비시와 정부가 부끄럽다"며 "미쓰비시와 정부가 과거에 저질렀던 행실을 피해자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는 걸 양금덕 역을 맡으며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120분간 공연이 마무리되고, 출연한 배우들의 충혈된 눈을 보고 '대본에 의한 연극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연극'이라는 걸 느꼈다"며 "광주는 역사를 바르게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역사적 사실이 기억·계승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인이 직접 대본을 쓴 연극 '봉선화'는 지난 2003년 나고야에서 초연됐으며 2022년 나고야에서 두 번째로 무대에 올려져 1천여명이 관람하는 등 호응을 얻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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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81)콩밭에 원수는 비둘기요 우리네 원수는 삼팔선 이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가세 감상 살다 보면 가는 곳 마다 걸림돌이 있다. 외나무다리 위의 원수도 있고, 오월동주가 그렇다. 미운 것일수록 눈에 자주 띄니 얄궂기 그지없다. 없었으면 하는 것이 어디 비둘기와 삼팔선뿐이랴. 그러나 이들도 내 인생의 동반이며, 엄연한 실상이다. 탓한다고 알아서 사라져 주지 않는다. 비둘기에게도 기꺼이 콩 한 톨 보시하며 삼팔선이 허물어지는 날을 기다릴 밖에 작위 없이 편하게 가로쓰기 하였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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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9)문전에 옥답은 어찌 되고 쪽박에 신세가 웬일인고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상주아리랑 한얼이종선 감상 인생살이의 흥망성쇠는 가늠키가 어렵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수도 있고, 금송아지의 추억을 부여안고 옛날을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경우도 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하였으니 길흉화복의 변천은 이토록 무상한 것이다. 문 앞에 금전옥답을 두고 떵떵 거렸는데, 가세가 기울어 밥을 빌어먹게 될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 지난날을 그릴수록 가슴은 아리고 쓰리다. 우측에 세 방의 유인을 찍어 작품의 균형을 잡았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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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8)무정한세월 야속하다 청춘시절 날 데려와 팔십삼이 먹도록 여기서 다 늙어 영혼이 되네. 아이구 원통하고도 참말루 싫어 누구게다 한을 다 풀까요. 서른다섯에 남편을 잃고 혼저 자탄 애탄하며 팔십 서이를 살어 나와 누구게다 이런 한을 풀겠나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게. 감상 청춘에 사할린으로 와 여든세살이 되었다. 타향살이에 살림살이는 구차했고 서른다섯 청상과부 설움마저 감내해야 했다. 자탄 애탄하며 살아 온 삶이 돌아보니 원통하고 허망하다. 무정한 세월에 그 한을 어이하리. 아리고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아리랑고개를 노래로 넘는다. 기댈 데 없는 허랑한 심사를 민체로 흘려 풀었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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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7)백운동 마당에는 신선이 놀고 학포동 중허리에 실안개가 떠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성인봉 장재로 넘어간다. 감상 울릉도에 대한 지명은 신라 512년(지증왕 13)에 우산국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 등장한다. 고려 태조 때 우릉도(芋陵島), 덕종 때 우릉성(羽陵城), 인종 때 울릉도(蔚陵島) 등의 지명이 등장하고 울릉도(鬱陵島)·우릉도(于陵島)·무릉도(武陵島) 등으로 불렸다. 일본은 울릉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 하고 독도를 송도(松島: 마쓰시마)라고 하기도 하였으나 메이지 정권 전후에 울릉도를 마쓰시마,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였다. 울릉도는 자연환경이 빼어난 소중한 우리 영토로서 3無(도둑, 공해, 뱀) 5多(향나무, 물, 바람, 미인, 돌)의 전화를 입지 않은 평화의 땅이다. 형제봉, 미륵봉, 나리령 등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 울릉도의 진산 성인봉과, 낮은 지대에서 보면 이곳에는 항상 흰 구름이 자욱한 백운동과 장재는 울릉도의 별천지이며, 학포동 마을 뒷편으로는 노인봉이 보인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울릉도의 평화로운 모습을 문양지에 고체로 옮겼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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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5)만주나 벌판에 솥 때우는 저 영감 우리 내우야 정 떨어진 것은 때울 수가 없느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주게 인제아리랑 한얼거사 감상 사뭇 설레고 가슴 달뜨던 사랑도 세월이 가면서 무뎌지고 서먹해진다. 세월의 흐름에 감정의 모서리가 닳아 긴장감이 사라지고 바람도 색이 바랬다. 친한 관계일수록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니, 매사 익숙함은 타성을 부르기 때문이다.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던 부부도 그 가까움으로 해서 관계가 뜨악해지는 것이다. 우리 내외의 정도 떨어진지 오래. 늙어 가면서 젊어서의 사랑이 더욱 그립다. 땜장이 할아버지의 손을 빌려서라도 소원해진 사랑을 잇고 싶다. *거사(居士): 벼슬하지 않고 은거하여 한가하게 지내는 사람을 말하며, 같은 의미로 처사(處士), 초부(樵夫), 어부(漁夫), 산인(散人) 등이 있다. 출가하지 않았으면서 법명을 가진 재가불자를 일컫기도 한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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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동포회 '송년의 밤'지난달 30일 문산읍 당동리에 정주하고 있는 파주사할린귀국동포회(회장 이화일)가 주관하는 '송년의 밤'이 문산읍 프리마 루체 2층 연회장에서 개최되었다. 40년만에 맞는 대설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총 100여 명이 참가하여 즐거운 '송년의 밤'을 보냈다. 전국사할린귀국동포연합회 권경석 회장,대한적십자사봉사회 파주지구협의회 연규희 회장, 민족통일 파주시협의회 허애경 회장, 민족통일 파주지구협의회, 파주시 적십자사 봉사회, 박정 국회의원, 파주시의회 이익선 의원,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이사 등이 참가했다. 전국 26개 지역 서울, 인천, 춘천, 안산, 화성, 김포, 오산, 파주, 남양주, 양주, 원주, 청주, 음성군, 제천, 아산, 천안, 서천군, 부산, 김해, 양산, 고령 등에 3천여 명 사할린 동포 어른들이 살고 계신다. 사할린특별법 조례 확장을 위해 힘쓴 파주시의회 이익선 의원은 "2023년까지는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태어난 분들만이 법적으로 사할린 1세로 인정을 받아야만 한국에 귀국할 수 있었다. 새해부터는 사할린특별법이 확장되어 귀국할 수 있는 가족의 수가 사할린 1세와 그 배우자에서 다수의 자식들과 그 배우자로 완화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현재 파주시에는 150여 명의 동포가 문산 당동리와 선유리에 살고 있다. 전국사할린동포연합회 회장인 권경석씨는 고르바초프 방한 시 동시통역을 맡았고, 부회장을 맡은 인무학씨는 모스크바 대학 컴퓨터정보학 석좌교수를 역임한 인재이다. 전 파주시사할린동포회 김영태 회장은 모스크바 체육대학 부총장을 역임하고, 농구감독의 경력을 가졌다. 파주 당동리에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 KBS한민족방송 체험수기 우수상을 3번이나 받은 박승의(전 사할린국립대학 교수)교수와 올해 우수상을 수상한 인무학 박사가 살고 있다. (주)국악신문 기미양 대표이사가 '사할린아리랑'사설을 낭독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 사할린이 좋다고 내 여기 왔나/일본놈들무숩어 내 여기왔지 우리 조선은 따뜻한데/그 땅에 못살고 내 여기왔나 우리 영감님은 왜 왔다던가/나만 혼자두고 자기만 갔네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한 많은 남화태(사할린) 징용 왔네 철막 장벽은 높아만 가고/정겨운 고향길 막연하다 정치 개방 후 햇빛은 밝고/우리의 살림엔 경사가 많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이날 국악 공연을 해주기로 한 서울, 용인, 동두천 3팀은 대설주의보로 교통이 두절되어 차량운행을 못해서 도착하지 못했다. 다행히 전 사할린한국교육원 이병일 원장이 봉산탈춤을 선사했다. 탈춤을 마치고 탈을 벗자 탄성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오늘 처음으로 눈앞에서 탈춤을 본 동포들이 전통 민속예술 탈춤의 신명을 공유한 마당이었다. 의정부시 삼정제빵소에서 사할린동포들과 '평화의 빵'을 나누었다. 권경석 회장과 회원들이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이화일 회장은 "모두 모여서 건강을 빌며 밝아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뜻 깊은 송년의 밤이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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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사할린아리랑/정성애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내가 왜 왔나 내가 왜 왔나우리 님 따라서 내 여기 왔지사할린이 좋다고 내 여기 왔나일본놈들무숩어 내 여기왔지우리 조선은 따뜻한데그 땅에 못살고 내 여기왔나우리 영감님은 왜 왔다던가나만 혼자두고 자기만 갔네 추천인: 권경석(전국사할린귀국동포회장) 유즈노 사할린스크 살던 정성애 할머니가 부른 아리랑이다. 할머니는 경남 삼천포시가 고향인데 1939년 18세 때 사할린 도로샤흐조로스끄 탄광에 징용으로 끌려온 남편을 따라왔다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음반으로도 나오고, 2016년 사할린에서 개최된 제1회사할린아리랑제에서 신마이아(12세)가 불렀다. 2019년 양주 사할린영주귀국동포회 사할린아리랑합창단이 서울아리랑페스티발 전국아리랑경연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1년 동안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지도해 준 이예솔 회장에게 감사드린다. 이후 전국아리랑전승단체가 불러주고 있다.우리 사할린 한인의 역사가 담긴 사할린아리랑은 아리랑과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우리가 파주에 영주귀국한지 15주년이 되어 오후 5시부터 기념식을 할 예정이다. 이날 다시 한번 불러 보고자 한다. 사할린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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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73)서방인지 남방인지 어서 잠들어라. 보리밭에 섰는 총각 찬이슬 맞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날 넘겨 주게. 감상 사랑이 떠나면 마음에 찬바람이 쌩쌩 분다. 세상 가장 높은 담이 돌아누운 여인의 등이란다. 이미 서방이랄 것도 없다. 동방이든 남방이든 알 바 아닌 것. 눈이 맞아 정분 난 옆집 총각만이 절박하다. 바람난 여인네의 달뜬 숨소리가 물씬 느껴지는 아리랑을 민체로 가로쓰기 하였다. 가로쓰기에 대하여 서예는 통상 오른쪽에서 부터 세로로 써 내려간다. 한글, 한문서예가 모두 같은데, 글자의 흐림이 위에서 아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쓰기에 무리가 없고 전체적인 조화도 자연스러워 오래 전부터 그리 써온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가로로 쓰고 읽기 때문에 서예적 필사는 낯이 설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가로쓰기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서예는 읽기에 편한 것보다 보기에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예술이라서 보편적으로 세로쓰기의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전통의 방식을 따라 작품을 한다. 작가 이종선(李鍾宣)은 아호가 한얼, 醉月堂이다. 한국서학회 이사장, 성신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초빙교수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강사, 한국서총 총간사를 지냈고, 지금은 경희대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중국난정서회 서울연구원장, 사단법인 한국서예술협회 회장, 이즘한글서예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